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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21] 재앙이 되느냐, 자원이 되느냐
11-08-29

 

[한겨례21] 재앙이 되느냐, 자원이 되느냐 [2011.08.15 제873호]
 
[특집] 새롭게 주목받는 도시 곳곳의 분산형 빗물저류시설… 뛰어난 방재효과에 저렴한 설치·관리비, 모아둔 빗물로 생활용수 사용 등 이점 많아
 
 

 

 
» 7월 말 내린 폭우로 물에 잠긴 서울 대치동. 대치동의 강우량은 ‘100년 만의 폭우’라는 서울시의 설명과 달리, 하수관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도 이 일대가 홍수 피해를 겪었다. 사진은 트위터에서 갈무리했으나 촬영자는 찾지 못했음.
 
 
 

지난 7월 말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물폭탄’이 터졌다. 서울의 심장인 광화문과 강남 일대가 물에 잠겼고, 아파트는 부서졌고, 산사태로 흙과 나무가 쓰나미처럼 휩쓸려 내려왔다. 전국적으로 70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명박 대통령은 “짧은 시간에 이런 용량의 비가 오는 데 맞춰 있는 도시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100년 만의 폭우”라며 ‘구멍 뚫린 하늘’을 탓했다.

저장시설 나눠 비를 나눠 모으자

하지만 맞는 말은 아니다. 서울 간선 하수관거는 10년 빈도 설계 기준인 시간당 강우량 75mm로 설계돼 있다. 그런데 관악구(시간당 110.5mm)와 서초구(시간당 85.5mm)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지역에선 하수관거의 용량보다 시간당 강우량이 적었다. 서울 평균으로 보면 시간당 강우량은 64mm로, 5년 빈도 강우량에 해당된다. 이를 두고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지난 8월3일 열린 집중호우와 도심피해 대책 토론회에서 “지난 5월 경북 구미 해평취수장 기능이 상실됐을 때도, 장마로 왜관철교가 붕괴됐을 때도, 이번 홍수 때도 ‘100년 만의 홍수’라고 한다. 어떻게 2011년 한 해에만 100년 빈도의 홍수가 3번이나 발생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막개발, 도심 불투수층 증가, 하수관거 내 이물질 퇴적 등에 따른 배수 불량이 홍수 피해를 부른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대책은 이 진단과 많이 어긋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8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하수관거 용량을 시간당 100mm로 확대하는 등 수해방지 대책에 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하수관거 확충에 2조1천억원, 하천 정비·빗물펌프장 조성 등에 1조4400억원, 대형 빗물저류배수시설 확충에 1조원, 산사태 방지 등에 4600억원을 들이겠다고 밝혔다. 하수관거가 사태의 본질이 아닌데도, 재원 마련 계획도 불투명한 대규모 ‘삽질’을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하수관거든 빗물펌프장이든 정해진 용량을 넘어서면 소용이 없다. 설치하고 유지하는 데 돈도 많이 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앙집중형으로 비를 모아 한꺼번에 흘려보내는 대신, 도시 곳곳에 저장시설을 분산시켜 비를 나눠 모으면 어떨까? 하수관거가 한번에 감당해야 하는 빗물의 양이 저장시설의 용량만큼 줄어들 것이다. 유철상 고려대 교수(건축사회환경공학부)는 8월3일 토론회에서 “침수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므로, 침수 발생을 최소화하고 시민의 안전을 확보할 시간을 버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침투 블록, 투수성 포장 같은 침투시설뿐만 아니라 저류조, 빗물탱크 등 대·소규모 저류시설을 마련해 기존의 집중형 대책에 분산형 대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자양동의 대규모 주상복합단지 스타시티는 대표적인 분산형 빗물저장시설이다. 단지의 4개 동 가운데 B동 지하 3층엔 1천t짜리 빗물탱크 3개가 설치됐다. 건물 4개 동의 지붕과, 조경시설을 포함한 대지의 빗물이 이 탱크로 모아진다. 단순계산하면, 이 건물에서만 비 3천t을 저장할 수 있으므로 하수관거에 그만큼 부담을 덜 준다는 얘기다. 이런 시설이 아파트 단지, 주차장, 학교 등 도시 곳곳에 설치돼 있다면 도심 물난리가 해마다 되풀이될까?

홍수 예방효과와 경제성 높아

서울대 빗물연구센터가 지난 8월3일 경기 수원시에 제출한 ‘수원시 물순환관리 기본계획 수립 용역보고서’를 보면, 빗물저장시설은 홍수에 매우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5년 빈도 강우량(시간당 60mm)에 맞춰 설계된 지선 하수관거를 증설하지 않아도, 10t짜리 빗물저장시설을 설치하면 100년 빈도 강우(시간당 100mm)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또한 같은 용량이라도 큰 저장시설 하나를 설치하는 것보다 작은 저장시설 여러 개를 분산 배치하는 것이 방재효과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됐다.

 
 
» 서울대 공대 지하에 설치된 빗물탱크에서 지난 8월3일 한무영 교수가 여과장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방재효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설치·관리비가 많이 든다면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온 길을 파헤쳐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공사해야 하는 하수관거 확보와 달리, 분산형 빗물저장시설은 비용이 적게 든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모을 탱크, 빗물탱크와 홈통을 잇는 연결관 등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스타시티의 경우 빗물저장시설을 설치하는 데 4억5천만원이 들었다.

분산형 빗물저장시설의 경제성은 단지 적은 설치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아둔 빗물을 화장실·조경 등 생활용수와 소방용수로 활용해 상수도를 덜 쓰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스타시티 입주자들이 내는 공용수도 요금은 한 달에 입주 가구당 100~150원에 불과하다. 스타시티의 연간 빗물 이용량은 단지 안에 내리는 비의 47%인 2만6천t이다. 상수도 이용료로 치면 약 3800만원을 아낀 셈이다. 12년이면 빗물저장시설 설치에 든 비용을 뽑는다.

서울대 기숙사와 공대 등에도 빗물저장시설이 있다. 기숙사에는 200t 규모의 시설이 있는데, 하루 평균 6.3t가량 화장실 물로 사용해 1년 동안 1600t을 쓴다. 250t 규모의 공대 빗물저장시설은 전체 빗물 사용량의 45%를 화장실 물로, 26%를 청소·세면용으로 공급한다. 두 시설 모두 원리는 같다. 건물 지붕으로 떨어진 빗물을 관을 통해 건물 지하의 빗물통으로 모은다. 빗물통에 들어가기 전에 먼지 등을 거르는 여과장치를 거친다. 빗물통에는 바이오필름이 들어 있어 미생물로 살균효과를 낸다. 고여 있기에 미세한 흙 같은 건 자동으로 침전된다. 이렇게 모인 물이 펌프를 통해 화장실 등에서 이용된다. 빗물을 활용한 연못도 있다. 관악산 계곡에 연결된 관을 통해 100t 규모의 물이 연못으로 흘러들어온다. 상수도로 채운다면 하루에 10만원이다. 이들 시설은 태풍이나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을 땐 미리 비워뒀다가 조금이나마 하류로 흘러가는 물을 붙잡아두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식용, 주방용수로 사용 거부감 없어

이렇게 수해도 막고 빗물도 활용하는 일석이조의 빗물저장시설을 도시 전체로 확산시키는 건 무리일까? 수원시는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와 지난 2009년 ‘빗물도시(Rain City) 프로젝트’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앞서 언급한 용역보고서는 이 프로젝트의 밑그림이다. 수원시의 물자급률(전체 물 사용량 가운데 자체 공급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10.9%에 불과하다. 전국 평균 72%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다시 말해 수원시가 쓰는 물의 90%는 팔당에서 끌어다쓴다는 얘기다. 멀리서 물을 끌어오는 만큼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

 
 
» 서울 자양동 스타시티의 빗물저장시설 개념도. 왼쪽부터 홍수 통제용, 빗물 이용·상수도 절약용, 비상용 탱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용역보고서는 수원시의 물 자급률을 높이고, 수해·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종합적인 물 관리 시스템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고 중앙집중식 물 관리 체계 대신 다목적 분산형 물 순환 대책을 제시했다. 여기서 관리 대상이 되는 ‘물’은 빗물뿐만 아니라 빗물에서 비롯되는 지하수·지표수·상수·하수 등이며, 이들은 전반적인 도시계획과 연계해 관리된다.

이 보고서에서도 핵심은 빗물을 저장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수원시의 저류조 18곳이 저장하는 빗물은 1만5천t이다. 시공 중인 29곳을 포함해도 3만8900t가량의 빗물만 확보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는 물 자급률을 눈에 띄게 끌어올리기 힘들다. 그래서 공공시설과 공동주택은 물론 도로, 단독주택, 비닐하우스, 폐정화조 등을 활용해 빗물을 저장해야 한다. 2020년까지 물 자급률 목표가 30%라면 빗물 1423만3천t을, 50%라면 276만8천t을 저장할 수 있도록 수원시내 곳곳에 빗물저장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이렇게 모은 빗물은 간단한 불순물 여과처리시설을 거쳐 생활용수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물 자급률 30%를 목표로 할 때 약 3천억원, 50%를 목표로 할 땐 약 7370억원이 든다. 절수·하수재처리수 사업 등에 드는 비용을 모두 합쳐도 각각 3075억원, 7463억원 정도다. 수원시가 훨씬 작기 때문에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하수관거 확보에만 2조1천억원을 쏟아붓겠다는 서울시의 구상과는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보고서는 제도적인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조례 등을 통한 빗물저장시설 설치 의무화 △물관리시설 설치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보조금·조세 혜택 △빗물 사용량에 따른 상수도세 감면과 빗물 포인트 부과 △빗물 유출자에게 비용 부담을 지우는 빗물 크레딧제 등이다. 시민들이 빗물을 잘 저장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취지다. 다행히 이런 아이디어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은 별로 없는 듯하다. 보고서에 실린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20% 넘는 응답자가 광역상수도를 대체할 수원으로 빗물을 골랐다. 지하수(약 46%)에 이어 2순위다. 빗물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은 60%를 넘었다. 특별한 처리를 하지 않은 빗물의 경우 청소·화장실 용수로 쓰겠다는 답변이 47%, 샤워·세탁 용수와 조경용수로 쓰겠다는 답변이 각각 14%, 13%였다. 불순물 등을 걸러내 처리한 빗물은 마시거나 주방용수로 쓰겠다는 답변이 42%로 가장 많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

비가 재앙이 되느냐 자원이 되느냐는 결국 접근법의 차이인 것 같다. 빗물연구센터 소장인 한무영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와플 구멍 사이에 시럽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규모가 작아 보여도 도시 곳곳에서 빗물을 저장하면 그 효과는 대단히 크다”며 “이제는 비를 다목적·분산형으로 관리해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인 수자원을 최소 비용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물 부족? 물 관리!
빗물 모으는 방법들

 

‘우리나라는 유엔이 지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에 그대로 보도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유엔은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라고 분류한 적이 없다. 인구 폭발을 경고하는 미국의 한 사설단체인 국제인구행동연구소(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가 만든 지표일뿐이다. 이 지표는 지나치게 단순해 나라별 사정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유엔 기준으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물 사정이 좋은 나라다. 유네스코가 2006년 발표한 물 빈곤지수(WPI)에서 우리나라는 147개국 가운데 43위다.

‘어쩐지 속은 것 같더라니. 봄비, 여름 장마, 태풍, 가을비에 겨울 눈까지 사시사철 비가 오는데 웬 물 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그건 한쪽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빗물을 저장해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보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물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나라다. 연평균 강우량 1276억t 가운데 545억t이 자연증발해 대기로 날아가고, 그냥 바다로 흘러가는 게 400억t이다. 댐이나 강물 등으로 우리가 활용하는 수자원은 331억t이다. 증발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그냥 흘려보내는 빗물을 모아 쓰는 게 홍수·가뭄 조절, 수자원 확보에 4대강 사업보다 백배 낫지 않을까.

빗물을 모으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선 건물 지붕을 깨끗이 청소하고 지하에 빗물탱크를 설치한다. 홈통과 이 탱크를 연결해 빗물을 받아둔다. 빗물을 사용하려면 펌프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모을 수 있겠느냐고? 아파트 지하주차장 1면을 가로 2.5m, 세로 5m로 가정하고, 여기에 4m짜리 빗물탱크를 설치한다면 빗물 50t을 모을 수 있다.

폐정화조도 훌륭한 빗물저장시설로 거듭날 수 있다. 전북 전주시는 아파트 오수관 설치 뒤 쓰지 않은 채 방치된 정화조를 정비해 빗물탱크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주시내 아파트 392곳 가운데 108곳에 폐정화조가 있는데, 여기에 빗물 4만t을 저장할 수 있다. 비가 올 땐 빗물을 모았다가 정화해 조경·청소용으로 활용하거나 갈수기에 하천으로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산과 논에서도 빗물을 모아둘 수 있다. 곳곳에 턱을 쌓아 물을 가두면 된다. 특히 산 중턱에 터널형 빗물저장조를 설치하면 홍수 방지뿐만 아니라 소방용수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남아프리카 내륙 보츠와나는 물이 매우 부족하다. 국기의 하늘색은 비와 물을 상징한다. 심지어 ‘풀라’ ‘테베’라는 화폐 단위의 뜻이 빗방울이다. 가뭄을 걱정하는 나라라 물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반대로 홍수를 걱정하는 나라라면 물 무서운 줄 알고 현명하게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 : 한겨레21 '재앙이 되느냐, 자원이 되느냐' [2011.08.15 제873호], 조혜정 기자zesty@hani.co.kr